텃밭을 가꾸던 경숙 씨의 뒤에서 “그림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경숙 씨는 뒤를 돌아본다.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무 하나. 가깝게 지내던 이웃 아주머니는 그 거대한 무를 그녀에게 안겨주었다. 기분 좋은 꿈에서 깨어나고 며칠 뒤 경숙 씨는 뱃속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존재였기에 떠나보낼까 고민도 했지만 차마 결단하지 못했고 열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이를 품었다. 그리고 아이는 토실했던 무만큼이나 우람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게 바로 나다. 너무도 순박한 태몽이어서일지 그 까닭을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내 태몽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다들 피식 웃음을 짓고야 만다. 그러면 나는 왜인지 모를 뿌듯함을 느낀다.
엄마 아빠는 나를 가진 후에도 경제적 이유로 참 바쁘게 살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문에 나는 태어나는 순간까지 이름도 예명도 없는 그저 셋째 아이였다고 한다. 엄마가 배를 가르는 무서운 수술을 받는 동안 아빠는 수술실 앞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었더랬다. 아빠는 그 흑백 신문에서 유일하게 컬러로 인쇄된 어느 숲의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감격하였다 하셨다. 그래서 그때 지어진 나의 이름 ‘자연’. 이 세상에 펼쳐진 자연처럼 아름답게 자라라고 나의 이름은 자연이 되었다.
나는 나의 태생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아주아주 어렸을 적에는 두 개의 태양이 떠올랐다는 쌍둥이 친구의 자랑 섞인 태몽 이야기를 듣고 조금 부럽기도 했었고, 사춘기 시절에는 어쩌면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무] 와 [자연]이 나와 너무 잘 어울리는 수식어라는 걸 깨닫게 되어서 특별히 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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