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동 언덕 마을과 세로로 주택
2022-11-14

2022.10.31.월.구름많음

단지 인사를 건넸을 뿐인데 요 넘어 ‘낙산 파크’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산책하던 할아버지. 골목의 갈림길에 머물며 지나가는 외국인들에게 영어로 말을 거는 아저씨. 길냥이 삐삐와 그렁이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시는 아주머니.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골목에 모여 앉아 신나게 대화를 나누고 계시는 동네 어르신들. 커다란 정자나무 아래에 각자 챙겨온 반찬을 펼쳐 놓고 왁자지껄 매운탕을 끓여 먹는 이웃들. 이 인근 주민들은 마을에 대한 애정이 유독 넘쳐 보인다. 모두의 얼굴에 하나같이 웃음이 피어 있는 것이 보기에 좋다.

 


나는 처음 방문한 이 동네가 썩 마음에 든다. 사람들도,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도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뻥 뚫린 하늘과 시야 아래로 넓게 펼쳐진 서울의 빌딩 숲, 저 너머로 보이는 남산 타워, 절벽 끝에 지어진 오래된 주택과 그 앞 조그만 마당에 갖가지 채소를 기르시는 빨간 조끼의 백발 할머니, 좁고 가파른 언덕길을 휘휘 주행하는 조그만 다마스 트럭과 골목마다 세워져 있는 작고 귀여운 스쿠터들. 모든 것이 따뜻한 태양 아래 차가운 공기 아래 아름다워 보이는 언덕 마을이다.

 

 


#오픈하우스서울
좋은 기회로 세로로 협소주택에 방문하게 되었다. 이미 매체에서 익히 보았던 집이지만 직접 방문을 한 건 역시 새로운 경험이고 유익한 공부였다.

공간적 디테일이 인상적이었다기보다는, 그 집이 가진 큼직큼직한- 군더더기 없는 공간 구성과 그 안에 담긴 생활방식이 인상적이었다. 골목에서 바라본 건물의 모습은 되게 특이했는데, 뭐랄까- 마치 뽀얗고 거대한 식빵이 툭 세워져있는 느낌이랄까. 동그랗게 모 깎이 된 한쪽 모서리가 더 그런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건축가를 따라 좁은 계단을 올라 집에 들어갔다. 고시원 같은 조그만 원룸에 오래 살아봐서일지, 세로로 주택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살만해 보였다. 부부가 좁은 집에서 부대껴 지낼 것을 생각하니 더 로맨틱한 일상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남쪽과 서쪽에 난 커다란 창문은 성곽 쪽의 나무숲과 이어졌다. 조금 잘 차린 숲속의 오두막이 따로 없구나- 생각했다. 매끈 따끈한 친환경 시멘트 소재의 바닥이 좋았고, 모든 조명이 간접 등이라서 좋았다. 때로는 식탁으로, 때로는 회의실로, 때로는 영화관으로, 때로는 파티장으로 활용되는 널따란 테이블도 좋았다. 4, 5층은 완전한 사적 공간으로 보호받는 점이 좋았다. 욕실과 화장실이 나뉘어 있는 점이 좋았고, 창밖 숲의 사계절을 바라보며 따끈한 물속에 몸을 뉠 수 있는 욕조 공간이 좋았다.

대학생 시절 보고서를 쓸 때는 좋았던 걸 ‘좋았다’고 뭉뚱그려 적지 못해 머리가 아팠는데-
참 편하다. 이제야 좀 공간 답사를 다닐 맛이 날 것 같다.


+
주황색 중절모를 쓴 양복 차림의 멋진 건축가님,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이 손 저 손 주물럭거림을 당해도 그저 즐길 줄 아는 그 집 고양이 역시 인상적이었다. 말랑 반죽 같은 보송보송 엉덩이, 쏘 큐웃.




𝘭𝘦𝘦𝘦𝘯𝘢𝘵𝘶𝘳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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