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이끼’
2023-02-25

엄마 아빠의 꽃 농장은 항상 따뜻하고 촉촉해서 이끼가 참 많다. 우산이끼, 솔이끼. 어렸을 적의 나는 땅 위에 보송히 덮여있는 솔이끼를 보며 요정들이 사는 마을을 상상하곤 했다. 마치 작은 잔디밭이 깔린 듯한 모습, 간질간질 촉촉하고 보드라운 촉감은 어린 나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우리 언니는 이끼를 떼어가 깨진 접시 위에 올려두고 고기를 썰어 먹는 시늉을 하며 소꿉놀이를 했다고 한다. 이끼는 언제나 우리에게 재미있는 장난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좋아하는 솔이끼가 우산이끼보다 훨씬 더 많았는데, 우산이끼의 번식력이 더 강해서인지 이제는 솔이끼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가끔가다 작은 화분 위에 피어난 솔이끼를 발견하면 무척 반가울 정도이다. 귀엽고 예쁜 모습의 솔이끼를 보면 여전히 나는 작은 요정들이 그 위에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곤 한다. 이끼는 나를 어린아이처럼 만드는 식물이다. 별것 아닌 작은 무언가에도 설레하고 신나 하는 어린아이.

목공을 배우고, 브랜딩 계획을 세우며 내 브랜드의 이름을 ‘이끼’로 정했다. 가끔 누군가 왜 이름을 이끼라고 지었는지 물어보지만, 그저 이끼를 좋아해서 그렇다고 대답할 뿐 구구절절 이끼를 왜 좋아하는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브랜딩 방향을 여러 차례 수정하다 보니 이제야 제대로 된 가닥이 조금 잡혔다고 생각한다. 심볼을 만들었고 대표 색깔과 폰트, 타겟층을 정했다. 어쩐지 내가 만든 타겟 페르소나는 나를 쏙 닮아 있었고, 내가 원하는 디자인 방향과 심미성 또한 어딘가 나다웠다. 결국 내 브랜드와 내 디자인들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고, 가장 나다울 때 가장 재미있는 작업을 할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아직 수정하고 보완해야 할 것이 많겠지만…

몇 사람 봐주지 않는 맥락 없는 삽화를 종종 그려왔던 것도, 어설픈 촬영 장비로 자연 다큐 영상 클립을 만들어왔던 것도, 생각해보면 오감을 자극하고 풍부한 감수성을 만들어내는 일을 항상 재미있어했고 또 그런 일을 하길 꿈꿔온 것 같다. 인제 와서 든 생각이지만 이끼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만든 가구와 소품이 동화 같은 공간을 만들어낸다면 좋겠다. 수수하고 아름답고 오감 자극 재치 있는 일상이 가득 담긴 공간을 만들어 내는 일! 비전이 또렷해졌다. 이제 더 열심히 궁리하고 더 노력해서 움직여야겠지. 학생의 신분에서 점점 벗어나야 한다. 걱정과 근심이 마음을 짓눌러도 용기를 가지고 이겨내야 한다. 잘 할 수 있을 거야. 다 잘될 거야.




 

'글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밀라노에서 봬요  (0) 2023.04.07
인사  (0) 2023.03.13
현영에게  (0) 2023.02.19
버섯 클램차우더  (0) 2023.02.13
뽀얀 메이플처럼 담백한 사람이 되기  (0) 2023.01.16
𝘭𝘦𝘦𝘦𝘯𝘢𝘵𝘶𝘳𝘦
menu
💬 자연
걷고 발견하고 오감을 느끼고 감상하고 기록하기.